민속의 현장
본문 바로가기

우리의 민속풍경

민속의 현장

정월대보름 금천리 깃고사

 

금천리 깃고사

깃고사는 농기를 모시는 제사다.

예로부터 농기는 농신을 의미하고 동시에 마을을 상징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충남 연기군 금천리마을이 산자락 얕은 구릉지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밭농사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산촌마을.

해마다 농사가 시작될 무렵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깃고사 풍속이 전해오고 있다.  

두레을 나갈때, 농번기에는 농기를 앞세우고  일을 하러 나가곤 했는데 상대를 만나면 한바탕 기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일단 싸움에 진 농기는 승자앞에 한동안 깃대를 낮추어야 했다.  

예전에는 깃고사를 집에서 지냈기때문에 마을의 신임이 두텁고 집안에 궂은 일이 없는 집을 선정하여 고사를 지낼 집

마당에 기를 세우고 제를 지냈다일단 기가 세워지면 집주인도 바깥출입을 삼가했을 뿐아니라, 외부인도 출입을 삼가

하는것이 예사였다.   요즈음은 주로 마을 회관 앞에 기를 세운다

기는 농기와 영기 두 개를 함께 세우는데 현재 금천리 농기는 광목천에 천으로 글씨를 바느질하여, 농자천하지대본 이라

붙이고 기 주변으로는 지네발을 달았다영기에는 우두머리 영자가 쓰여져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회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깃고사에서는 백설기 시루와 시루에 꽂은 북어 밤, 대추, 과일, 돼지머리의 제물을 올린다.

초헌관이 향을 사르고 술을 올린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깃고사는 마을당산제와도 유사하다.

전통적인 유교방식으로 치뤄지는데 축문을 읽게되면 삼헌을, 축문이 없으면 단헌을 한다.

깃고사가 진행되는 동안 흥을 돋우기 위한 풍물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종헌관이 술을 올리고, 풍물을 울리던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절을 한다.

소지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고사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이 각자 절을하고, 정성을 바친다.

고사상에 올렸던 음식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나누는데 고사상에 올랐던 제수 중 북어는 부정과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깃대 상단에 꽂아두고 깃대는  한달동안 세워놓았다가 다시 보관하고 내년을 기약한다.

깃고사를 마친 후 마을 아낙들은 집으로 돌아와 한해동안 집안이 평안하기를 빌며 집안 곳곳에 있는 신들에게 치성을

드린다.

농사가 시작될 무렵 깃고사를 통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바탕 마을 잔치를 벌이고 마을과 집안의 무탈함과 풍년을

기원하는 모습은 소박한 우리네 정서가 담겨져 있다.

 

정월대보름 장현리 볏가릿대

 

장현리 볏가릿대

예로부터 우리 농촌에서는 볏가릿대를 세우는 풍습이 전해져오는데, 지금도 충청남도 당진과 서산지역에서는 이

풍습이 행해지고 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이른 아침부터 볏가릿대 세우기가 한창이다.

짚으로 한편에선 오곡주머니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오곡주머니는 쌀, 보리, 수수, , 조 등의 오곡을 넣어 만든.

풍년을 기원하며 만든 오곡주머니를 장대 끝에 매달아놓는데, 볏가릿대를 내리는 이월 초하루, 오곡주머니를

풀어 곡물이 늘어난 여부를 놓고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마을사람들이 한 해 풍년을 기원하며 볏가릿대를 세운다.

커다란 벼 이삭을 형상화한 볏가릿대에는 농부들의 풍년 기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음력 이월 초하루, 장현리 음력 정월 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를 내리는 날이다.

풍물을 치며 마을 사람들이 볏가릿대로 향한다.

먼저 볏가릿대 앞에 정성껏 마련한 제상을 차려놓고 고사을 올린다.

이날은 바람과 물, 땅을 관장하는 모든 신에게 고사를 올리는데, 풍작을 기원하는 마을주민들의 마음이 간절하.

오곡백과의 풍작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며 절을 올린다.

고사가 끝나면 잡신들에게 제사음식을 나눠 부정을 없앤다는 고수레를 한다.

보름동안 세워 놓았던 볏가릿대를 눕힌다.

제일 먼저 볏가릿대에 매달았던 오곡주머니를 풀어 그 양을 살펴본다.

보름 전 볏가릿대를 세웠을 때 보다 그 양이 늘었으면 늘어난 만큼 풍작이라고 믿었다.

볏가릿대에 쓰였던 삼방줄은 미리 준비해 놓은 섬에 담는다.

이 섬을 볏가릿대를 세웠던 집 헛간으로 옮겨 보관하는데 이렇게 하면 풍년이 들어 헛간이 쌀섬으로 가득할 것으

로 믿었다.

보관했던 묵은 섬은 볏가릿대를 세웠던 논과 밭에서 태워 거름으로 사용했는데 이 또한 풍년이 든다고 믿었던 까

닭이다.

볏가릿대를 내리는 이월 초하루는 머슴날이라고도 하여 한해의 고단한 농사를 앞두고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날이기도 한 것이다.

농사의 시작을 준비하는 이월이다.

농부들은 풍년을 기원하며 볏가릿대와 함께 마을의 결속을 다지고 흥겨운 잔치를 벌인다

풍년을 염원했던 농부들의 마음처럼 올해도 논과 들에 풍성한 결실이 맺히길 기원해 본다.

 

 

 

삼월삼짇날

강원도 산메기

 

강원도 산메기

높고 험한 산지로 둘러싸여 산악도라 불렸던 강원도.

산메기의 의미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름 그대로 산에 제물을 바치고 대접한다는 뜻의 산먹이에서 유래되었다.

조상과 마을 ,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산신과 조상을 모시는 치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산메기가 활발한 곳은 삼척, 강릉 일대의 산간지역이다.

산메기는 마을에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행하지만경에 능통한 경사나 무당을 불러서 빌기도 한다 

이른 새벽 내미로리 마을에는 산메기 준비가 한창이다.

내미로리의 산메기는 집안마다 날을 받아 행하기도 하고 그 해의 당주로 정해진 집에서 날을 받아 같이 지내기도 한다.

산메기를 지낼때에는 둥글래미떡을 만드는데 둥글래미떡은 호랑이가 좋아하는 떡으로 여겨 예로부터 호환을 피하기 위

해 산메기 때 만든다.

내미로리는 마을 사람들이 경을 읽는 경사와 굿을 하는 무당을 불러서 한마을의 여러집이 비용을 준비하여 함께 지낸다.

산중턱에 도착하면 경사가 북을 치며 경을 외우는데 부정을 가시는 것이다.

산 정상을 향해 다시 오른다. 조상굿을 드리기 위해서다.

돌무더기로 마련해 놓은 산메기터. 산메기터는 마을마다 집안마다 정해진 산, 정해진 장소가 따로 있다.

조상님을 상징하는 한지와 실타래를 마음에 드는 돌 하나에 맨다.

조상굿은 집안마다 제물을 따로 차리고 각자의 소원을 빈다.

무당의 축원과 함께 조상굿이 이어진다. 행여 부정이라도 탈새라 정성을 모은다. 산메기의 마지막은 용왕굿이다.

산신당 옆 샘이 용왕을 모시는 장소가 된다. 용왕신을 모시는 것은 산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까닭이다.

먹거리, 땔거리 온갖 것을 산에 의존해서 평생을 살아가는 산마을 사람들에게 산은 곧 신령이요, 신앙이다.

무당을 통해 접신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신수를 점치기도 하고 액운을 막는 비방을 내리기도 한다.

넓적한 무명 조각을 잘라 나누어 주고 정해진 집안의 나무에 걸어 놓는다.

나무에 무명을 거는 것을 조상님 새 옷 해드린다고 불렀다.

 

 

한식 청천리 은진송씨 절사

청천리 은진송씨 절사

 

충북 괴산군 청천리. 이곳이 바로 조선 후기 문신이며 대학자였던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 선생의 묘가 있는 곳이다.

4월 한식. 우암의 후손들도 선조의 묘를 찾는다이 절사에는 괴산, 청주 등에 살고있는 우암의 후손들이 참가한다.

종손이 간단한 인사만을 올리며 산위로 올라가는데, 묘에 절을 할 때는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 신발을 벗는다.

우암의 집은 절사를 산소에서 직접 지내지 않고 재실에서 지내기 위해 우암의 묘소에서 집에서 직접 마련한 간소한 음

식을 바치고 고유를 한다. 이 절차를 '이라 한다.

천이 끝나고 나서 후손들은 묘소 아래 있는 재실로 내려온다.

이 집안은 제수를 진설할 때 홍동백서의 원칙에 따라 누런 빛이 도는 배를 서쪽에 놓기 위해

배 껍질을 벗겨 흰 속살이 드러나도록 한다.

우암의 집에서는 부부를 함께 차리는 합설을 하기 때문에 부인의 제사도 함께 지낸다.

종손 이하의 자손들 모두가 절을 두 번 올리는 것은 묘소로부터 모셔온 조상님께 드리는 인사이다.

종손은 하늘과 지하에 있을수도 있는 모든 조상신을 향해 오늘의 절사를 알린다.

향을 피워 오늘의 절사를 알리고 술잔을 모사기에 세 번에 나누어 따라 붓는다.

모사기에 술을 따르는 것은 지하에 계신 조상신을 위해서 술로 강신을 청하는 것이다.

우암 종가에서는 여느 집과는 달리 서서 술을 따른다.

초헌 후 육적을 올리는데, 고기와 물고기, 갱은 미리 진설하지 않고 순서에 따라 올리는 것이 독특하다.

조상님께 절사를 고하는 독축을 한다독축이 끝나면 종손만 두 번 절을 올린다.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에는 계적을 올리고 종헌에는 어적을 순서에 따라 올린다.

제를 지내는 원칙과 순서는 집안의 가풍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연장자가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삼헌을 한다.

종헌이 끝나면 자손들은 조상이 음식을 흠향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인 합문을 한다.

국을 내리고 숭늉을 올리는 진다가 이어진다.

수저를 내리고 밥뚜껑을 덮는데 이를 철시복반 이라 한다.

조상신을 보내드리기 위해 참사자 전체가 재배를 드리는 사신이 이어진다.

축문과 지방을 불사르는 분축은 종손이 재실 밖에서 행한다.

재실 왼편에는 우암의 공덕을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신도비를 세운 비각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를 드리는 것은 산소가 있는 산의 신령에게 조상의 묘소를 잘 보살펴 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제수를 음복하며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기리는 한식 차례.

조상의 묘를 돌보고 제를 지내는 것은 조상에 대한 고마움과 은혜를 되새기고 못다한 효를 실천하는 것이다.

한식 차례는 전통과 가풍을 익히며 세대간의 정을 이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단오 초곡리 별신제

초곡리 별신제

성황당에 걸린 금줄이 5, 단오별신제의 시작을 알린다바다 마을인 초곡리는 단오제 준비가 한창이다.

한쪽에선 신대를 만들기위해 대나무를 깎는다.

단오별신제는 해마다 열리는데 2 년마다 한번씩 무당을 불러 굿을 행한다.

5월 초 나흗날 , 성황당에 올릴 제물을 준비한다.

성황당에서 천제당을 향해 상을 차리고 먼저 천신에게 제를 올린다천신제가 끝나고 성황제를 지낸다.

단오굿이 시작되는 아침 ,성황당에서 부정굿이 시작된다.

부정하고 불결한 것을 없애고 신을 맞기 위해서다무녀는 물과 불로 부정을 친다.

부정굿을 마치고 풍어를 가져다 주는 서낭을 맞이하는 굿을 하는데

마을 어민들은 특히 해서낭의 영험함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대내림으로 신을 모셔온후 이어지는 골매기 서낭굿 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신에게 마을의 평화와 풍요를 빈다.

세존굿이 이어진다.   무당은 자식을 점지해주는 당금애기설화를 구송한다성주는 집안의 최고 신이다.

무당은 굿사이에 익살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굿판을 흥겹게 한다.

집안의 모든 조상을 청하여 조상굿을 벌인다. 군웅장수굿은 김유신등 여러장군을 청한다.

놋동이를 입으로 물어 장군신의 위력과 위용을 보여준다밤늦도록 손님굿이 이어진다.

손님은 마마와 홍역을 가져오는 신이다손님굿을 잘 치뤄야 건강하게 지낸다고 여겼다.

다음날 아침 , 제면굿이 이어진다.

제면굿은 무당들의 조상인 제면할머니를 위한 굿인데 굿에 사용하는 떡은 백설기를 쓴다.

무당은 마을 사람들에게 백설기를 나누어 주며 신의 보살핌이 있기를 바란다.

서낭신이 내려와 굿을 잘 받았는지 물어보는 대내림굿이 이어진다.

거리굿은 볼거리가 많은 굿이며 재미가 있어 예전에는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구경을 오기도 했다.

남근숭배의식은 성적 결합을 모방해 풍어를 기원한다.

성황제, 해서낭제가 끝나고 풍어제가 이어진다.

어촌 마을인 초곡리에서 용왕신은 어민과 풍어를 관장하는 신이다.

태풍이 와도 바다에 나가 죽은 사람이 없었던 것은 모두가 용왕신의 영험함이라고 믿어왔다.

무녀는 선주와 배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풍어를 기원한다.

무녀가 용단지를 타고 마을 사람들에게 신의 말을 전하는 용동우굿은 동해안 북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

흰천을 길게 늘어뜨려 흔들며 뱃노래굿을 한다.

하얀 광목천으로 만든 용선은 신이 저승으로 돌아가기 위한 배다.

용선에 돈을 넣으며 풍어를 기원한다.

정성들여 만든 용선을 태우는 것으로 23일간의 긴 여정은 끝이 난다.

신과 인간이 하나되어 기원하는 초곡별신제

성황신과 용왕신을 모시며 마을의 평화와 풍요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정성과 염원처럼 올해도 만선의 기쁨과 마을의 평

안을 기원해 본다.

 

 

 

 

 

 

 

 

'우리의 민속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혀져가는 민속놀이  (0) 2020.01.17
설날  (0) 2020.01.07
민속놀이의 유래  (0) 2019.12.20
우리의 민속놀이 1~5  (0) 2019.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