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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궁궐의 새 궁궐의새 문화유산으로서 조선시대 궁궐의 가치는 전 세계 어느 문화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며 500년을 이어온 왕실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다. 나라의 안녕과 번성의 원천이 되는 장소였고 역사의 태동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궁궐이 조선 왕조의 심장과 같은 구실을 했다면 궁궐 후원의 숲은 허파와 같은 구실을 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도 창덕궁 후원과 종묘 신림의 식생들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남산, 북한산과 더불어 녹지 띠를 형성하여 살아 있는 생태 축으로서 구실을 하고 있다. 새들이 깃들기 위해서는 새끼를 치며 사는 터와 쉬는 터, 먹이 터 등 다양한 환경조건이 필요하고, 이와 더불어 새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충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궁궐은 하나의 작은 생태.. 더보기
대한민국의 궁궐 대한민국의 궁궐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1392년)하고 나서 수도를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옮긴 뒤 제일 먼저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인 경복궁을 세웠다(1395년). 한양을 도읍지로 선택함은 당시의 풍수지리 사상에 따른 것으로 그에 따른 도시계획 또한 철저히 진행되었다. 한양의 지형과 지세에 맞게 도시가 계획된 것이다. 주궁인 경복궁은 현무(북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거북과 뱀이 뭉친 모양)에 해당하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백호(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범)인 인왕산, 주작(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 붉은 봉황)인 목멱산(남산), 청룡(동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한 짐승)인 낙산, 이 네 개의 산에 둘러싸인 곳에 터를 잡아왔다. 그리고 3대 태종 때(1405년)에는 경복궁의 동.. 더보기
의궤란 이런 것이다. 의궤란 무엇인가? 의궤란 요즘으로 치면 국가적인 의례나 행사를 치른 후 관련 기록들을 정리한 보고서 혹은 백서 형태의 기록이다. 국가 의례나 행사들 중에서는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제사나 의례, 일상적인 수준의 건물이나 악기 수리 등이 있는가 하면 비상시적으로, 혹은 특별한 이유 때문에 이루어진 의례나 행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왕 및 왕세자 등의 혼인이나 책봉, 장례, 특별한 경우의 사신 접대, 궁궐의 대대적인 중건 같은 일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에 국가에서는 후대에 참고할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참여한 인원과 들어간 비용들을 모두 정리한 기록을 의궤의 형태로 남겼으며, 이는 후대 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벌어질 때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의궤의 이름은 어떻게 구성이 될까? “인열왕후부묘도.. 더보기
한국의인장(印章)분류 한국의인장(印章)분류 인장을 지정종목으로 분류 국보(37) 보물(2396) 국가민속문화재(174) 시도유형문화재(446) 인장의 모양이나 형태로 분류 양각원인(陽刻圓印)(123) 양각방인(陽刻方印)(2640) 음각원인(陰刻圓印)(8) 음각방인(陰刻方印)(197) 기타,모양이나 형태가 없는 것(85) 인장의 종류별로 분류 관인(官印)(1531) 사인(使印)(780) 사찰인(寺刹印)(17) 장서인(藏書印)(4) 낙관인(落款印)(12) 국새(國璽)(21) 보인(寶印)(606) 법명인(法名印)(1) 성명인(姓名印)(2) 낙관용(落款用)(9) 서원인(書院印)(6) 수결(手決)(1) 출판인(出版印)(4) 도서인(圖書印)(1) 기타(57) 인장이 만들어진 시대별 분류 고려시대(32) 조선시대(2372) 대한제국시대(.. 더보기
한국의 인장(印章) 인장(印章)은 보인(寶印)·관인(官印)·사인(私印)등으로 나눈다. 보인(寶印)은 국새(國璽 : 玉璽·御璽)와 어보(御寶)가 있다. 국새는 국명을 새긴 「朝鮮國璽」ㆍ「大韓國璽」와 직명을 새긴 「朝鮮國王之寶」ㆍ「皇帝御璽」 등의 실무에 사용한 실용인이 있고, 어보는 존호(尊號)· 휘호(徽號)·시호(諡號)를 새기어 종묘에 보관하던 의례적으로 왕의 가례나 보위에 오를 때 공식행사에 사용하던 보인이 있다. 관인으로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의 중앙관과 지방관의 인장을 망라한 관리의 인장이다. 사인은 개인이 사용한 도서인과 낙관인이 주종을 이룬다. 임금의 인장은 삼국과 고려까지는 국새(國璽)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조선시대에는 옥새(玉璽)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왕과 왕후, 왕세자의 인장을 함께 .. 더보기
세계기록유산 16 세계기록유산 16 세계기록유산이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문화재로, 인류 대대손손 길이길이 보존할 만한 기록물을 대상으로 지정한다. 세계기록유산에는 아주 오래되고 중요한 사실들만 기록한 것들이 등재될 것 같지만, 한국의 새마을운동 기록물이나 5.18기록, 이산가족찾기 방송 기록물처럼 현대의 기록이거나, 개인적인 기록도 훌륭한 가치가 있다면 등재된다. 사실 단순히 세계"기록"유산이 아니라 (Memory of World) 즉 세상의 기억이란 이름다운 등재기준이 있다. 대한민국은은 2019년 기준 모두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 중에 있다. 이는 아시아 1위,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07년 이후로 우리 정부에서는 전근대 자료 하나와 근현대사 자료 하나를 묶어서 등재를 추진하였는데, 그 등재 추진의.. 더보기
세계기록유산의 목적 세계기록유산은 왜 만들었나 유네스코가 고문서 등 전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하여 1997년부터 2년마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 기록유산을 선정하는 사업으로 유산의 종류로는 서적(책)이나 문서, 편지 등 여러 종류의 동산 유산이 포함된다.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유산을 가장 적절한 기술을 통해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식과 보존의 필요성을 증진하고, 기록유산 사업 진흥 및 신기술의 응용을 통해 가능한 많은 대중이 기록유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세계 민족의 집단 기록이자 인류의 사상, 발견 및 성과의 진화 기록을 의미하고, 그 종류로는 문자로 기록된 것(책, 필사본, 포스터 등), 이미지나 기호로 기록된 것(데생, 지도, 악보, 설.. 더보기
한국의 세계유산 14곳 한국의 세계유산 14곳 1.석굴암과 불국사 석굴암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 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명칭은 석불사로 칭하였다. 불국사는 석굴암과 같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 김대성이 창건하여 서기 774년 신라 혜공왕때 완공하였다.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2.종묘 종묘는 태조 3년(1394)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9월에 완공하였으며, 곧이 어 개성으로부터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종묘는 사적 제125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정전(국보 제227호), 영녕전(보물 제.. 더보기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와 석굴암 경상북도 경주에 위한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현재 석굴암은 내부 전면 공개 관람 시 항온항습 등의 문제가 우려되어 1976년부터 유리벽을 통한 외부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대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삼층석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더보기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유산이다. 세계유산은 1960년, 이집트가 아스완 하이댐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 댐이 완성되면 댐의 수몰지역 내에 있는 누비아 유적은 사라질 위기였다. 이에 유네스코는 누비아 유적을 지키기 위해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했고 60개국이 여기에 호응하여 누비아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 및 발굴, 기술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누비아 유적 내의 아부심벨 대신 전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옮겨졌다. 이를 계기로 국제적으로 문화, 자연유산들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72년 11월 16일,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17회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의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조약(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