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박장 (金箔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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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金箔匠)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金箔匠) 

'금박장(金箔匠)'이란 직물 위에 얇은 금박을 이용해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여성의 혼례복 등에서 볼 수 있다. 금박장식은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보관상의 문제로 현전하는 유물이 많지 않으나 순조(純祖)의 3녀 덕온공주(1822~1844)가 혼례 때 입었던 것이라고 전하는 원삼에는 '수(壽)'와 '복(福)'자가 금박 장식되어 있다.(중요민속문화재 제211호 덕온공주의복)
금박장식은 접착제를 바른 문양판을 문양을 넣고자 하는 위치에 찍고 접착제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금박지를 붙인 다음 문양 밖에 있는 금박지를 다시 떼어내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금박장 기술은 옷의 구성에 어울리는 문양을 선별 · 배치하는 안목을 바탕으로 문양판을 조각하는 목공예 기술과 주재료인 아교와 금박지의 물성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오랜 제작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되는 기술이다.
'금박(金箔)'은 금 조각[金片]을 계속 두드려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진 것을 뜻하나 오늘날에는 금박지를 이용해 직물 등에 문양을 장식하는 기술로 이해되고 있어 지정명칭을 '금박장(金箔匠)'으로 명명하였다.
'금박장'은 우리나라 복식문화를 화려하고 품격있게 장식하는 공예기술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으로 전승의 맥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 (石匠) 

석장(石匠)’이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주로 사찰이나 궁궐 등에 남아있는 불상, 석탑, 석교 등이 이들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 석조문화재가 전해지고 있어 우리나라의 석조물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석공예의 재료는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화강암을 비롯하여 납석과 청석, 대리석 등이 활용되고 있다.
전통적인 석장들은 망치, 정 등 수공구를 사용하여 돌이라는 단단한 물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수준 높은 석조문화를 탄생시키고 발전시켜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1호     번와장 (翻瓦匠) 

'번와장'이란 지붕의 기와를 잇는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기와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번와와공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삼국시대의 기와기술은 더욱 발달하여 기록에 의하면 ‘와박사(瓦博士)’라는 장인이 있었고, 이들은 일본에 건너가 기와기술을 전해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원년(1392)에 ‘와서(瓦署)’를 설치하여 기와를 생산하도록 하였으며, 태종 6년(1406)에는 ‘별와요(別瓦窯)'에서 기와를 보급하도록 하였다. 별와요에는 와장을 비롯하여 승려도 배치하여 대대적으로 기와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와공의 명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기와를 만드는 제와(製瓦)기술자로 ‘와공(瓦工)’ 또는 ‘와장(瓦匠)’이라고 하며, 벽돌 만드는 장인이 기와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와벽장(瓦壁匠)’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기와를 올리는 장인은 ‘개장(蓋匠)’이라고 하는데 이는 제와장인과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기와를 만드는 것은 ‘번와(燔瓦)’라고 하고 기와 덮는 일을 ‘번와(翻瓦)'라고 하기 때문에 기와 덮는 장인을 ’번와와공(翻瓦瓦工)‘이라 한다.
지붕은 한국 건축을 형성하는 조형요소이면서 한국건축의 전통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부분중 하나이며, 한국 목조건축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술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와지붕은 한국전통건축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곡선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으로 지붕의 조형적 특징은 번와 기술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 (燃燈會) 

연등회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이미 확인되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되어왔다. 신라와 고려의 연등회는 불교적 행사였지만, 조선시대에는 민속행사로 행해졌고 해방이후 전통적인 시련, 탑돌이의 행렬 문화가 확대되어 연등행렬로 발전하였다.
연등회는 관불의식, 연등행렬, 회향의 형식으로 진행되며 연등행렬 때 동원되는 등(燈)이 다양하고 다채롭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연등회는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궁중과 서민 모두를 아우르는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역사적으로는 고려의 연등회가 사회적 기능이 가장 컸었고, 유교가 성했던 조선시대에서도 연등회는 서민의 중요한 문화행사이자 축제로서 기능해왔으며, 오늘날에도 초파일의 연등행사는 대중들의 중요한 문화행사로서 기능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3호     법성포단오제 (法聖浦端午祭)

'법성포 단오제'는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일대에서 단오 무렵 지역 주민에 의해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민속축제이다. 법성포에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을 관리하는 조창(漕倉)이 있었으며, 조기 파시(波市)의 중심지였기에 오래전부터 상권(商圈)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파시가 형성되는 시기에 난장(亂場)이 크게 섰으며, 이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단오제가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제, 부녀자들이 중심으로 즐겼던 선유(船遊)놀이를 비롯해 '숲쟁이'(법성포 숲)에서 벌어지는 예인들의 경연행사는 법성포 단오제의 지역성과 전통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았다. 또 과거의 전통을 기반으로 현재의 주민이 향유하고 있는 생활·문화적 가치를 주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 (宮中綵花) 

‘궁중채화’는 전문적인 장인이 궁중의 연희나 의례 목적에 맞게 비단, 모시 등으로 제작한 꽃으로  궁중에서 존중의 뜻을 표현하거나, 평화·장수·건강 등의 상징으로 꽃을 이용한 궁중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     삼화사 수륙재 (三和寺 水陸齋) 

수륙재(水陸齋)’는 온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孤魂)의 천도를 위하여 지내는 의례로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에 비해 공익성이 두드러지는 불교 의례이다. 조선초기부터 국행 수륙재로서 대규모로 설행되어 왔던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문헌에 나타나 있다.
동해 삼화사는 조선전기 국행수륙재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고혼 천도의 수륙재 전통을 가진 사찰이며, 의식과 범패, 장엄 등을 아울러 전승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     진관사 수륙재 (津寬寺 水陸齋) 

수륙재(水陸齋)’는 온 천지와 수륙에 존재하는 모든 고혼(孤魂)의 천도를 위하여 지내는 의례로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에 비해 공익성이 두드러지는 불교 의례이다. 조선초기부터 국행 수륙재로서 대규모로 설행되어 왔던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문헌에 나타나 있다.
서울 진관사는 조선시대에 왕실 주도의 대규모 수륙재를 주로 담당하였던 중심 사찰이었으며 의식, 설단, 장엄 등 수륙재의 여러 분야에 대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7호     아랫녘 수륙재 (아랫녘 水陸齋)

수륙재는 조선초기부터 모든 수륙의 고혼 천도를 위하여 행해졌던 불교의례로 『조선왕조실록』에 설행기록이 나타나는 등 역사성과 예술성이 높으며,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에 비해 대중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낮재 · 밤재 합설이라는 의례상 특수성을 지니고있다.
아랫녘 수륙재는 경남 일대에서 전승되던 범패의 맥을 이어 의례와 음악적 측면에서 경남 지방의 지역성을 내포하고 있는 불교의례로 가치가 크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 (扇子匠) 

「선자장(扇子匠)」은 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摺)부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접부채인 합죽선(合竹扇)은 현재까지 전승되는 최고 수준의 정교함과 세련미를 갖춘 부채로서, 고려시대부터 나전, 금속, 칠, 옥공예 등과 접목되어 나라를 대표하는 공예품이었다.
합죽(合竹)이란 대나무의 겉대와 겉대를 붙여서 만든 것으로 고려시대에 대나무의 주산지인 전남 담양에서 처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죽선은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서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관청의 장인들이 주로 제작하였고 외교나 대외무역에도 활용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9호     아리랑

국가무형문화재 아리랑은 향토민요 또는 통속민요로 불리는 모든 아리랑계통 악곡으로, 한민족의 정서가 녹아 있는 노래이자 가장 널리 공유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상징 중의 하나이다. 또한, 아리랑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민중의 희로애락과 염원을 노래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생명력을 더하며 전승되어옴에 따라 무형문화재로서의 역사성, 예술성, 학술성 등의 가치가 탁월하다.
※ 2012.12.5.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 아리랑은 전국적인 기반을 두고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되어 현대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아리랑 종목은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     제다 (製茶) 

‘제다’(製茶)는 차나무의 싹, 잎, 어린줄기를 찌거나 덖거나 발효 등을 거쳐 재료로 만든 후 비비기, 찧기, 압착, 건조 등의 공정을 통해 마실 수 있는 차(茶)로 만드는 전통기술을 말한다.
제다(製茶)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 다서(茶書)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제다(製茶) 기법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하게 변화․발전하여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전승·통용되고 있다. 차 제조 방법 및 음다 방식 등에서도 우리나라만의 고유성이 있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다’는 한반도 남부 지방의 차산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차 제조 기술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일반적으로 공유·전승되고 있으므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     씨름 (씨름)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를 맞잡고 힘과 기술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려 승부를 겨루는 경기로서, 한민족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바탕으로 유구한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이다.
「씨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시풍속 놀이로서, 다양한 놀이의 형태가 오늘날까지 온 국민에 의해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는 점, 고대 삼국 시대부터 근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물, 문헌, 회화 등에서 명확한 역사성이 확인된다는 점, 씨름판의 구성과 기술 방식 등에서 우리나라만의 고유성과 표현미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 한국 전통놀이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대상이라는 점 등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     해녀 (海女) 

해녀는 한국의 전통적 해양문화와 여성 어로문화를 대표하는 산 증인이다. 시대적 변천을 넘어 해녀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왔으며, 해녀의 생업과 문화에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및 공유지의 지속적인 이용과 분배에 관한 여러 가지 지혜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해녀에 관한 기록은 17세기 제주도 관련 기록에서 보이듯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해녀들의 ‘물질’은 원초적인 어로 형태로 다른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어로법이다. 또한, 물질경험에서 축적된 생태환경에 대한 민속지식이 상당하고 동료해녀에 대한 배려와 협업, 해녀들의 신앙과 의례 등 해녀만의 독특한 공동체적 생활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해녀와 관련된 문화는 무형문화재로서 역사성, 예술성, 고유성 등의 가치가 탁월하므로 종목을 보존·전승하고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제주해녀문화)되었다.
※ 해녀와 관련된 문화가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3호     김치 담그기

「김치 담그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역적, 사회적, 경제적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공동체로 참여하는 일상적 반복적 문화임. 김치는 지역을 막론하고 한국인의 식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음식이고, 국제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상당기간 한국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협동과 나눔이라는 공동체 정신이 담겨진 문화로, 이러한 문화를 통해 개개인은 문중, 친․인척, 마을, 이웃, 新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결속을 갖게 되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치 담그기의 핵심인 ‘김장’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전통지식을 담고 있으며, 사회의 선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하는 나눔, 결속, 화합 등의 정신은 현대사회까지 지속되고 있다.
과거에는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어머니, 며느리 등 여성공동체 중심으로 세대간 전승이 이루어졌다면, 현대는 과학이 접목되고남성들도 김장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변해가고 있고, 학교,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도 다양한 형태의 김장문화 전승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한 김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발효균은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지역적 다양성을 보여줌으로써 자연환경에 따라 파생되는 문화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김치 담그기는 고도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전승되는 생활관습이고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4호     제염 (製鹽) 

우리나라는 소금산지가 없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바닷물을 원료로 하여 소금을 생산함. 자염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고, 현재까지 이어져온 천일염전은 1907년에 도입되어 100여년 지속되어왔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자염법(煮鹽法)은 갯벌 흙, 바닷물, 햇볕을 이용하여 얻은 함수를 소금가마에 붓고 불을 지피는 방식이고, 천일제염법은 오로지 햇볕과 바람만으로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자염이나 천일염은 갯벌에 조성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갯벌 천일염 생산량 중에 86%을 차지하고 있음. 그리고 소금으로 화재를 예방하고 부정한 것을 퇴치한다는 신앙차원에서 우리나라만의 고유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향후 소금 생산방식과 작업구조에 대한 연구는 어촌문화와 우리나라 갯벌의 생태에 대한 학술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임. 또한 서해안의 갯벌 염전은 낙조와 함께 독특한 경관을 연출한다.
※ 제염은 특정지역에 한정되어 전승되는 전통 지식, 기술이 아니므로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종목으로만 지정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5호     온돌문화 (溫突文化)

한반도 지역의 온돌문화는 청동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 부뚜막식 화덕과 연도가 설치된 원시적 형태의 난방방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고 기원전 3세기~1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원시적 온돌 유적들이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점들로 미루어 보아 한반도에서 온돌문화는 약 2천년이상 전승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 온돌은 서양 벽난로와 다르게 연기를 높은 굴뚝으로 바로 내보내지 않고 불을 눕혀 기어가게 만들어서, 불의 윗부분을 깔고 앉아 사용하는 탈화좌식(脫靴坐式) 바닥 난방이 특징으로 방내부에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오래 난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온돌문화는 한국의 총체적인 주거문화로 바닥 난방 및 생태환경 활용 기술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관습과 규범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주택, 실내건축, 가구의 형식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을 대표하는 ‘온돌방’ 문화로 대중화되었다.
여름철의 기후환경에 대응한 마루방과 겨울철의 기후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온돌방은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 요소들로, 현재 온돌방은 중국 및 만주지방의 바닥 난방 방식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한민족의 고유한 주거기술 및 주생활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온돌문화는 기술적 발전과 주요 주거공간의 형식적 변화, 생활방식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 원형인 바닥 난방 방식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온돌문화는 오래전부터 전승되고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어 한국사회의 주생활과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쳐온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산으로 한반도가 처했던 혹한의 기후환경에 지혜롭게 적응하고 대처해온 한국인의 창의성이 발현된 문화라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그 가치가 있다.
※ 온돌문화는 한반도 전역에서 오래도록 한국인들에게 공유되고 관습화된 한국인의 주생활문화이므로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종목으로만 지정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6호     낙화장 (烙畵匠) 

‘낙화장’은 종이, 나무, 가죽 등의 바탕소재를 인두로 지져서(烙) 산수화, 화조화 등의 그림(畵)을 그리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낙화에 대한 기원은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된 ‘낙화변증설(烙畵辨證設)’에서 찾을 수 있으며, 19세기 초부터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다.
한국의 낙화기법은 본래 전통회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본 화법은 전통 수묵화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동양화의 부벽준(斧劈皴), 우점준(雨點皴) 등과 같은 각종 준법을 붓 대신 인두로 표현하며, 수묵화에 나타난 먹의 농담도 인두로 지져서 나타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낙화장은 인두와 불을 다루는 숙련된 손놀림과 미묘한 농담을 표현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     장 담그기 (醬 담그기) 

‘장 담그기’는 콩을 사용하여 만든 식품인 장(醬) 그 자체의 효능을 넘어, 재료를 직접 준비해서 장을 만들고 발효시키는 전반적인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두장(豆醬)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장을 만들어서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장을 따로 보관하는 장고(醬庫)를 두었으며,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등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장은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우리나라의 ‘장 담그기’는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독특한 장 제조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메주를 띄우는 과정을 거친 후 된장과 간장 두 가지의 장을 만든다는 점, 전년도에 쓰고 남은 씨간장을 이용해 수년 동안 겹장의 형식을 거친다는 점 등은 한국의 장 담그기가 갖는 특징이자 독창적인 대목이다.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오랫동안 장을 담가 먹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 음식 조리법이나 식문화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 한국의 주거문화, 세시풍속, 기복신앙, 전통과학적 요소 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 세대 간 전승에 의해 모든 한국인들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다만, ‘장 담그기’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각 가정을 중심으로 현재도 자연스럽게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8-1호     전통어로방식-어살

‘전통어로방식 - 어살(漁箭)’은 어촌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어업문화로서, 대나무 발 등을 치거나 돌을 쌓아서 밀물 때 연안으로 몰려들었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고기를 잡는 어구(漁具) 또는 어법(漁法)을 말한다.
어살(漁箭)’은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고려 시대 문헌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16~17세기 이후 해안지방의 지형, 수심 등의 자연조건과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에 따른 해산물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인해 ‘어살’의 변형이 이루어져 서해안에서는 주벅(柱木網, 주목망), 남해안에서는 방렴(防簾), 장살(杖矢)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다양하게 전승된 전통어로방식 중 ‘어살’은 어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보물 제527호)에 실린 ‘고기잡이’에 나타나 있듯이, ‘어살’은 조선 시대까지 연안어업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연근해 어선어업이 발달하면서, ‘어살’을 포함한 전통어로방식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어살’의 사례로는 남해군 지족해협과 사천시 마도·저도 등에 설치된 죽방렴을 이용한 멸치잡이가 있다.
‘전통어로방식 - 어살(漁箭)’은 자연과 생태환경에 대한 이해, 물고기의 습성, 계절과 물때를 살펴 물고기를 잡는 어민들의 경험적 지식이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 어촌문화와 어민들의 어업사, 민중생활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어살’이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그물살’로 진화하여 지속되고 있다는 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지정가치가 높다.
다만, ‘전통어로방식 – 어살(漁箭)’은 우리나라 어민들의 경험적 지식체계이고, 특정지역에 한정되어 전승되기보다는 어촌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종목만 지정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9호     불복장작법 (佛腹藏作法) 

「불복장작법」은 탑의 내부에 사리 등을 봉안하듯이 불상・불화 등을 조성하여 모시기 전에 불상 내부나 불화 틀 안에 사리와 오곡 등 불교와 관련한 물목(物目)을 봉안함(불복장)으로써 예배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세속적인 가치의 불상・불화에 종교적 가치가 부여되어 예배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고려 시대부터 설행(設行, 베풀어 행함)되어 700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해당 의례의 저본(底本)인 『조상경(造像經)』이 1500년대부터 간행되어 조선 시대에 활발히 설행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비전(秘傳)되어 현재까지 전승의 맥을 이어온 점, 한・중・일 삼국 중에서도 의식으로 정립되어 전승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고, 『조상경』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경전인 점, 불복장의 절차와 의례요소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점, 세부 내용마다 사상적・교리적 의미가 부여된 점 등이 높이 평가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40호     삼베짜기

삼베짜기는 대마라는 섬유 원료에서 삼베라는 직물을 짜는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삼베는 땀을 빨리 흡수하고 건조가 빠르며, 통풍이 잘되고 열전도성이 커서 시원할 뿐만 아니라 마찰에 대한 내구성이 커서 세탁할 때 손상이 적은 장점 때문에 삼한시대부터 선조들이 손수 길쌈을 통해 입어온 옷감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에 인정된 보유단체가 속한 경북 안동 지방에서 생산하는 안동포는 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이었으며 지방특산물로 지정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 삼베는 예부터 개인이 아닌 마을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 생산되고 후대로 전승된 집단적 기술이기에 특정 보유자는 인정하지 않고, 보유단체(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를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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